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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트리와 함께 테이블마다 시즌을 알리는 장식물이 놓여 있었다. …그 방이 화약 냄새와 부상자들의 구슬픈 통곡 소리, 그리고 피로 뒤범벅이 돼 있었다 ….”세밑이다. 구세군의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하면서 한 해는 또 저물어가고 있다. 이 만남의 시즌에 대형 참사가 엄습했다. 14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을 입은 총기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뒤숭숭하기 짝이 없다. 350건이 넘는 총기사고로 지새다시피 했다. 그게 2015년의 미국의 현 주소다. 게다가 127명이 숨지고 수 백 명이 부상을 입은 파리 연쇄테러의 악몽을 아직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중동계에다가, 열성적인 이슬람으로 밝혀진 20대 부부가 직장 송년 파티장에 난입해 대 학살극을 벌인 것이다.

단순한 대형 총기사고인가, 아니면 테러인가.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의문은 꼬리를 물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백인 경찰과 흑인계의 갈등 등으로 증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여기에 반(反)이슬람 정서까지 겹쳐 미국사회는 얼어붙고 있다.

이 정황에 기묘한 문화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도(prayer)를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샌버다니노 참사가 벌어지자 적지 않은 정치 지도자들은 희생자들과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화당의 대선주자 젭 부시가, 또 마이크 허커비가 그랬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것이 비아냥이다.

정치인들, 특히 보수 공화당 지도자들은 총기로비단체의 파워가 무서워 총기규제법 강화를 외면하고 있다. 그 결과 또 다시 벌어진 게 대형 총기사건이다. 그러니 그들의 ‘기도 운운’ 발언은 위선에 불과하다. 이런 논리와 함께, 이런 비난이 일고 있는 것이다.

아주 틀리지 않은 지적으로 보인다. 보수 유권자 표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다. 그러니 ‘기도’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실제로 기도의 능력을 믿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정치인이 없는 것이 아니니까.

‘기도 따위는 집어치워라. 행동으로 보여라’-. 블로그 마다 넘쳐나고 있는 비난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기도는 어느덧 ‘수치스러운 일’이 되고 만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미국 사회의 민 낯이 날로 이지러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형 참사가 발생한다. 그러면 대통령부터 나선다. 다 함께 기도하자고. 아무도 그 제의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기도가 먼저다. 그런 다음 참사의 책임과 원인을 규명한다. 그런데 정죄가 먼저다. 대형 총기참사의 책임은 전적으로 총기규제 강화를 외면한 정치인에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정작 무고한 인명을 해친 살인자에 대한 비난은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대살육극 참사와 이슬람은 관계가 없다는 이슬람 옹호론이 오히려 적극 개진된다. 그리고 기도는 수치스러운 일이 돼버린 것이다.

이 정황에서 새삼 한 가지 뉴스가 눈길을 끈다. 페이스 북 최고 경영자 마크 저커버그가 딸을 낳은 사실을 밝히면서 아이들을 위한 더 낳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페이스북 지분의 99%를 사회에 내놓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 뉴스가 반가운 것은 다름에서가 아니다. 긴장감 속에 미국의 표정은 날로 사나워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고유의 미국적 미덕은 한 부분에서나마 지켜지고 있다는 안도감에서다.

억만장자들의 부(富)의 사회 환원은 하나의 미국적 전통이다. 글로벌 시빌 소사이어티 보고에 따르면 미국 국민의 자선 기부금액은 전체 GDP의 1.9%를 차지, 유럽의 0.3%에 비해 여섯 배를 넘는다. (한국은 0.18%)그리고 미국의 400대 억만장자들이 내놓는 자선 기부금은 연간 평균 150여억 달러로 소득의 10%에 이른다.

이 같은 관대한 미국의 기부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기업정신, 검약, 자선 등을 강조한 청교도 가치관이다.” 알렉시스 토크빌이 일찍이 한 말이다. 그러니까 억만장자들의 부의 사회 환원은 오랜 미국적 전통인 것이다.

그 전통이 새삼 다시 자리 잡게 된 것은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2010년 재산의 최소 50% 이상을 기부하자는 서약인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시작하면서다. 게이츠와 버핏은 이미 각각 95%와 98%를 사후 기부하겠다고 약정했다. 이 약속에 참여해 재산기부를 서명한 억만장자는 187명에 이르고 저커버그는 99%를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자수성가한 청년기업인이자 세계 7위의 억만장자다. 그런 그가 갓 태어난 딸에게 선물한 것은 돈이 아닌 ‘기부의 가치’다.

악으로, 미움으로 가득 찬 것 같다. 온통 세상이.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그리고 선이, 사랑이, 그리고 생명이 결국 이긴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그의 나눔 정신이다. 이런 면에서 저커버그의 자선행위는 어쩌면 2015년 최대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미주한국일보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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