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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얼마나 낯선 문자들이 많은지, 문자 모양이 다양한지 알고 싶다면 좋은 사이트가 하나 있다. ‘흑인생명을 위한 편지(Letters for Black Lives)’ 사이트이다. 구글로 이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이제껏 구경도 못해본 신기한 문자들이 줄지어 있다. 한 텍스트를 이렇게 많은 언어로 번역해 한자리에 모아놓은 일은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제각기 다른 언어로, 하지만 한 목소리로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 부모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혹시라도 영어가 어려울까봐 모국어로 우리에게 호소를 하고 있다. 아시안 2세들이 1세 부모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이다. ‘엄마, 아빠, 삼촌,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 전 상서이다.

지난주 미국을 긴장시킨 인종갈등 사태가 아시안 커뮤니티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인종갈등의 뿌리인 흑인차별, 특히 백인경관들의 공권력 남용으로 죽어가는 흑인들 인권문제에 아시안이 관심을 갖자는 움직임이다. 흑인 커뮤니티의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을 ‘우리’ 커뮤니티에 확산하자며 아시안 2세들이 힘을 합쳤다. 생면부지의 젊은이들 수백명이 뜻 하나로 뭉쳐 ‘흑인생명 편지’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테크놀로지 시대이니 가능한 일이다.

전무후무한 이 프로젝트의 발단은 ‘오해’였다. 지난 6일 밤 미네소타에서 교통검문 중 흑인 운전자를 사살한 경관이 아시안이라는 루머가 퍼졌었다. 운전자의 여자 친구가 당시 상황을 동영상으로 생중계하면서 ‘경관은 중국인’이라고 잘못 말한 때문이었다. 경관이 라틴계라는 사실은 7일 밤 밝혀졌다.

그 사이 아시안 2세들, 특히 중국계 2세들은 긴장했다. 흑인에 대한 세대 간 인식차이로 커뮤니티가 1세와 2세, 부모세대와 자녀세대로 나뉘어 원수처럼 싸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 2014년 뉴욕에서 중국계 경관이 쏜 총탄에 맞아 비무장 흑인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경관이 기소되자 미전국의 중국계 1세들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경관이 아시안이어서 인종차별을 당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반면 젊은 세대는 흑인에 대한 경찰의 차별적 공권력 사용을 비난하며 커뮤니티의 반 흑인 정서를 지적했다. 경관이 한인이었다면 한인사회에서도 비슷한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이런 대립의 재발을 염려한 중국계 여성이 트위터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시안 2세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로 폭발적이었다. 흑인에 대한 부모세대의 편견을 없앨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 그들은 함께 편지를 쓰기로 했다. 실시간 공동 작업이 가능한 구글 문서도구를 이용해 서로 얼굴도 모르는 젊은이들 수백명이 함께 편지를 썼다. “우리 얘기 좀 해요” 로 시작하는 영어 편지가 완성되고, 수십개 아시안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한국어 번역에는 한인 젊은이들 수십명이 동참했다.

아시안 이민 1세들에게 흑인에 대한 경험은 제한적이다. 대부분은 흑인과 함께 어울려본 경험이 없다. 자영업자들이 가난한 흑인동네에서 가게 운영하며 겪은 경험이 유일하니 인상이 좋을 리가 없다. 반면 우리의 아이들에게 흑인은 친구이고 직장 동료이며 애인이다. “흑인들은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며 이들이 당하는 차별은 결코 ‘그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라고 2세들은 편지에 썼다. 그들에 대한 경찰의 부당한 공격은 국민으로서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 그래서 ‘흑인생명도 소중’ 운동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미국에 살면서 흑백갈등을 남의 일로 여길 수는 없다. 그 갈등이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터질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흑백의 고래싸움에 끼여 한인사회는 수십년 기반을 뿌리째 뽑혀본 경험이 있다. 4.29 폭동이다. 이번 미네소타 경찰 총격사건도 한인과 전혀 상관없지는 않다. 경관 기소여부를 결정할 램지카운티 검사장이 한인이다. 3살 때 미국에 온 존 최 검사장이다.

우리 2세들의 ‘흑인생명 편지’ 운동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우선 아시안의 단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맡겨진 일만 열심히 할 뿐 수동적이라고 알려진 아시안 2세들이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또 의미가 있다. 그들이 미국의 핵심이슈인 인종갈등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며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2015년 기준 아시안 인구는 2,100만명(전체의 6.4%). 이민이 많아서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숫자로 보아도 이제는 우리 2세들이 주인의식을 가질 만하다. 우리 후손이 주도할 미국을 기대한다면 우리의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 전체 그림을 보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어보자
junghkwon@koreatimes.com 

미주한국일보 <권정희 논설위원> 2016.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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