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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말,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작업복 차림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1년 만이었다. 청바지에 티셔츠, 허리에는 연장이 가득 담긴 연장띠를 차고, 안전모를 쓰고 해비타드 집짓기 현장을 찾았다. 세계 각 지역을 다니며 가난한 가족들에게 거처를 마련해주는 해비타드 봉사활동에 참여한 지 32년. 테네시, 멤피스에서 새 집들을 짓고 헌 집들을 수리한 이번 프로젝트는 카터 부부의 33번째 집짓기 행사였다. 내년, 34번째 프로젝트 예정지는 캐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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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1일, 92세 생일을 맞는 그는 사실 이번 멤피스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지난해 8월 암이 발견돼 간암수술을 받고 이어 뇌로 전이된 사실이 확인되자 그는 “앞으로 몇 주 정도 더 살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의사들은 그가 잘 해야 1년을 살 것으로 전망했었다.

당시 그는 낙관적인 표정으로 일관했지만 그것은 가식이었다고 최근 고백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에 의지해 의연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손에 달린 것, 어떤 일이 닥치든지 받아들이리라”하는 자세였다고 했다.

속으로 그는 죽음을 각오했을 것이 분명했다. 가족력으로 볼 때 그는 당장 죽는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가족들 중 이렇게 오래 산 사람이 없었다. 아버지가 췌장암으로 59세에 사망한 데 이어 두 여동생과 남동생 모두 같은 암으로 50대와 60대 초반에 사망했다. 85세로 가장 장수한 어머니 역시 유방암과 뼈암,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그에게 암이 찾아든 것은 새로울 게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치료 시작 4달 후인 12월부터 암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지난달 검사에서는 암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나이의 조건을 뛰어넘는 왕성한 활동으로 주목 받아온 그는 이제 암까지 이겨냈다.

인생에서 성장기를 제1막, 결혼해 가정을 꾸려가는 성년기를 제2막, 은퇴 후의 노년기를 제3막이라고 하면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3막의 스타이다. 노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그처럼 잘 보여주는 롤모델이 없다. 그는 어떻게 이렇게 건강하게 장수하는 걸까.

지난 2004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전 세계에서 유난히 장수 인구가 많은 지역 5곳을 선정해 ‘블루 존’이라고 명명했다. 그리스의 이카리아 섬, 캘리포니아의 로마 린다,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일본의 오키나와, 코스타리카의 니코야 등지인데 이들 지역 주민들은 웬만하면 백세를 넘고, 죽는 날까지 대단히 건강하다. 백세 넘게 살 확률이 미국의 경우에 비해 10배나 높다. 생활환경과 문화는 제각각이지만 이들 블루 존 주민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즐겁게 사는 생활이다. 굳이 따로 운동을 하지 않아도 고산지대 등 자연 속에서는 생활 자체가 몸을 많이 움직이게 한다. 식사는 채식 위주로 과식을 피하고 20% 부족한 듯 먹는다. 가족들과 사이가 좋고, 친구들과 자주 적당양의 음주를 곁들이며 어울린다.

그 외 중요한 것은 삶의 목적과 종교 생활.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날 살아야할 목적이 있는 사람, 즉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기대수명이 7년 연장된다고 한다. 아울러 어떤 종교든 상관없이 한 달에 4번 이상 예배에 참석하는 생활은 기대 수명을 최고 14년 늘린다고 한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초라하게 밀려난 대통령이었다.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하고 백악관을 떠날 때 그는 패잔병 같은 모습으로 조지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를 맞은 것은 빚만 산더미 같이 쌓인 다 쓰러져가는 농장뿐.

심한 우울증과 소외감으로 그는 삶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2년 쯤 방황하던 어느날 밤 그에게 계시와도 같이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대통령 도서관을 자신의 업적 기념관으로 만들 게 아니라 세계 분쟁해결 센터로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아침에 일어나야 할 목적을 찾았다. 그 결과가 지난 30여년 세계 각 지역의 평화와 민주주의, 제3세계의 보건에 기여한 그의 헌신이다. 덕분에 그는 지난 200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아울러 기대수명을 잔뜩 추가했을 것이다.

다음은 신앙생활과 가족사랑. 그는 단순히 예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장년 주일학교를 수십년 지도해왔다. 그에게 신앙처럼 변함없는 것은 부인 로잘린 여사에 대한 사랑. 부부는 올해 결혼 70주년을 맞았다. 이들 요소로 그에게는 10여년의 기대수명이 추가되었을 것 같다.

기나긴 노년기가 우리 모두의 앞에 놓여 있다. 은퇴를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은퇴 생활 35년차 카터의 삶을 참고하자.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미주한국일보 논설위원  2016.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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