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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품질이 우수해도 모든 소비자가 그 상품을 구매하지는 않는다. 품질은 떨어져도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고, 추억 등 개인적 사연으로 다른 상품에 끌릴 수도 있다. 소비자의 선택에는 두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상품 자체 그리고 소비자의 개별적 필요· 욕구이다.

선거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2016년 대통령 선거는 양당 후보의 능력과 자질, 가치관 그리고 경험이 비슷한, 그래서 누가 당선되든 사실 크게 상관이 없는 예년의 선거들과는 달랐다. 이민자, 유색인종, 무슬림, 여성을 싸잡아 비하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본가치를 부정하고, 그 언동이 경박해서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의심되는 정치 문외한이 후보가 된 특이한 선거였다.

선거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신뢰 문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기는 하지만 결국은 자질 있는 후보와 자질 없는 후보 사이의 선택, 유권자들은 전자를 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대부분 생각했다. 전문가들의 전망도, 여론조사 결과도, 미디어들의 분석도 방향은 하나,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조차 내부적으로는 클린턴 당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투표가 끝난 지난 8일 저녁,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설마~’의 끈을 놓지 못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기대는 무참하게 빗나갔다.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연설을 보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품의 품질 못지않게 소비자의 개별적 욕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였다. 클린턴도 언론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얼마나 부적격인지에 집중하는 동안, 그래서 그에게만 현미경을 들이대는 동안, 그런 그에게 희망을 품은 많은 유권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간과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오류,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속단의 우를 범했다.

선거 전날인 지난 7일 LA타임스에는 ‘타임스 여론조사를 묵살하지 말라’는 칼럼이 실렸었다. 모든 여론조사가 ‘클린턴 당선’을 점칠 때, 유일하게 ‘트럼프 당선’을 점친 것이 USC/LA타임스 여론조사였다. ‘엉터리’ ‘터무니없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여론조사 디렉터인 댄 슈너는 이 조사의 의미를 칼럼에서 설명했다.

일반 여론조사가 단순히 두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는가를 물은 반면 USC/LA타임스 조사는 어떤 후보를 어느 정도(1~100) 지지하는 지를 물었다. 선거가 가까울수록 클린턴 지지자가 계속 늘어난 것은 다른 조사들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지 정도에 있어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훨씬 열광적이라는 사실은 이 조사에서만 드러났다. 투표 당일 투표소에 나가 투표할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다. 그대로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클린턴 지지자들이 합리적 판단에 기초해 그를 선택했을 때, 트럼프 지지자들은 기필코 그를 뽑아야겠다는 간절한 열망으로 그를 선택했다. 트럼프가 비난받았던 좌충우돌 언동에 그들은 환호하면서 딱 그렇게 워싱턴 기성 정치권을 뒤엎어주기를 바랐다. 승리연설 중 트럼프는 당선의 초석이 된 그들을 ‘잊혀진 남성과 여성들’로 지칭했다.

‘잊혀진 자들’은 193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내놓으면서 쓴 말이다. 대공황으로 침체된 경제의 피라미드 맨 밑바닥에서 허덕이며 ‘잊혀진’ 공장 근로자, 농부 등 백인남성들이 일자리를 갖고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경제를 살리겠다고 그는 약속했었다.

2016년 트럼프는 세계화와 디지털화에 따라 점점 바닥으로 내몰리고 있는 백인 근로계층을 ‘잊혀진 자들’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들 ‘침묵하는 다수’의 박탈감에 불을 지폈다. 지난 수십년 공장이 하나둘 문을 닫고 탄광이 폐쇄되는 동안 직장을 잃으면서 무용지물이 된 느낌, 저임금 노동으로 연명하며 겪는 좌절감, 그럼에도 도무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울분 … 분노가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들끓었지만 이 사회의 엘리트 계층은 그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트럼프라는 폭탄이 기성 정치경제 시스템을 뒤흔들어 놓기를 그들은 기대했다. 대졸 미만 백인남성의 72%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선거는 끝나고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했다. 트럼프를 ‘우리 대통령’으로 맞을 수 없다는 시위는 대도시와 대학가를 중심으로 연일 계속되고 있다. 캠페인 중의 막말들을 생각하면 그가 어떤 정치를 펼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무슬림 · 이민자 혐오범죄는 이미 고개를 들고 있다. 백인의,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나라를 되찾겠다는 설익은 인종차별이 기승을 부리기 좋은 상황이다.

후보 트럼프와 대통령 트럼프는 다를 것으로 기대한다. 인종, 성별, 종교의 벽을 넘어 ‘잊혀진 자들’ 없는 정치를 펼치기를 바란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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