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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1 17:20

대통령의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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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0년 3월 5일 보스턴 관세청 앞은 일촉즉발의 긴장에 휩싸였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영국군과 이들을 야유하는 식민지 주민간의 갈등이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어디선가 돌이 날아오고 영국군이 이에 대응해 발포하는 바람에 5명의 시민이 죽고 6명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보스턴 분위기는 잇단 무리한 과세로 영국 정부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영국 군인들이 식민지 사람을 죽였으니 결과가 어떻게 될 지는 물어보나 마나였다. 영국을 지지하던 변호사들까지 이들 군인의 변호 맡는 것을 거부했다.

이 때 영국 정부의 부탁을 받고 군인들의 변호를 수락한 인물이 있다. 일찍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며 식민지 주민들 사이에 신망이 높던 존 애덤스라는 변호사였다. 그는 그 해 11월 열린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평결을 할 때 군인들의 신분이나 국적은 고려 대상이 아니라면서 단지 이들이 군중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며 위협을 느꼈다면 무죄고 야유에 자극 받아 흥분된 상태에서 발포해 사람이 죽었다면 과실치사라고 주장했다.

식민지 주민들로 구성된 배심원은 애덤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기소된 장교 한 명과 6명의 군인에게는 무죄, 2명의 군인에게는 과실치사죄를 인정했다. 유죄 평결을 받은 군인 두 명도 사형이 아니라 엄지 손가락에 낙인을 찍는 비교적 가벼운 벌을 받았다.

이 사건이 놀라운 것은 영국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한 시절 식민지인을 죽인 영국군을 변호하겠다는 사람과 그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 식민지 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재판이 끝난 후에는 풀려난 군인이나 변호인에 대한 어떤 보복도 없었다. 이들의 변호를 맡았던 애덤스는 훗날 독립 전쟁에 앞장서 조지 워싱턴 다음으로 미국 2대 대통령이 된다.

올해로 240주년을 맞은 미국 독립은 보기 드물게 성공한 정치 혁명이란 평을 받는다. 미국 혁명 뒤에는 프랑스 혁명 후 등장한 기요틴도, 러시아 혁명 후 나타난 시베리아의 강제 수용소도 없었다. 미국 독립전쟁이 벌어졌을 당시 독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3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들은 독립을 성공시킨 후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거나 반대한 사람들에 대한 정치 보복을 하지 않았다. 미국이 근대 국가 중 민주주의를 처음 실현하고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이처럼 적이라도 법률과 증거에 따라 재판하고 반대파도 껴안을 줄 아는 포용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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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 대한 탄핵 여부가 결국 헌법 재판소로 넘겨졌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일단 공이 재판소로 넘어간 이상 차분하게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순리다. 대한민국 헌법은 고위 공직자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을 때 탄핵이라는 합법적 절차를 통해 쫓아낼 수 있는 길을 마련해두고 있다. 헌법은 또 법관은 판결을 할 때 여론이나 사회적 압력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문재인 같은 대중 선동가는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탄핵을 인용하지 않을 경우 혁명밖에 없다며 공공연하게 법원을 겁박하고 내란을 선동하고 있다. 헌법과 정치 현실에 대한 초보적인 인식도 없는 이런 인간이 변호사고 한 때 대통령 후보였다는 사실이 한심할 뿐이다. 법률과 양심이 아니라 여론몰이와 선전선동에 따라 하는 재판을 인민재판이라 부른다. 문재인은 한국의 법원을 인민재판소로 만들고 싶은 것인가.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들’은 한 때 모국이었던 영국과의 독립을 선언하면서도 ‘독립 선언서’에서 “오랫동안 세워진 정부는 가볍고 일시적인 이유로 교체되어서는 안된다”며 “기나긴 권력 남용과 찬탈이 한결같이 국민들을 절대적 독재 아래 두려는 의도임이 명백히 밝혀졌을 때만” 그런 정부를 전복하는 것이 국민의 권리이며 의무라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판결은 빠르면 4월 이전, 늦어도 6월이면 나온다. 박근혜 탄핵이 확정될 경우 6월이나 8월이면 대선이 치러질 수 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탄핵이 인용되지 않더라도 12월 대선은 기정사실이다. 대선 시기를 불과 몇 달 앞당겨 보겠다고 헌재를 위협하고 내란을 선동하는 것은 자신의 정치적 욕심만을 생각한 무책임의 극치로 볼 수밖에 없다. 문재인은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으로서도 무자격자임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미주한국일보 201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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