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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지리추억.jpg 

친구가 카톡을 보내왔다. 고국의 봄을 알리는 사진들이다. 개나리도 피었고, 복숭아꽃, 철쭉꽃이 만개한 완연한 봄 풍경이다. 이 맘 때쯤이면 먼 산 아지랑이가 나른하게 피어오르던 어린 시절 고향의 그 봄이 아지랑이처럼 아롱아롱 내 마음에 피어난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서서히 녹아내리고 눈 속에 덮여있던 보리싹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땅속 눈 녹은 물을 빨아 올리기 시작하는 이 즘이면 먼 산에선 진달래, 철쭉꽃이 불긋불긋 피어나고, 골목 어귀엔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나던 그 봄. 그 노란 개나리 꽃잎들이 떨어진 사이로 노란 병아리들이 어미닭을 졸졸 따라가며 삐약 삐약 노래하던 나른한 봄 풍경이 문득 아련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이 맘 때쯤이면 겨우내 어디에 숨어 있었던지 신기하게도 어딘가에서 노고지리들이 나타나 우리 개구쟁이들을 들판으로  불러내곤 했다. 지리 찌리 지리리 찟지리…  하늘 높이 날아 올라서 움직이지도 않고 한 곳에 정지하여 한참을 그렇게 우지지다가는 울음을 뚝 그치고 쏜 살같이 아래로 내려꽂히며 보리밭 이랑 속으로 사라지면 우리는 그 노고지리를 잡겠다고 온갖 머리를 짜내곤 했었다. 노고지리가 하늘 높은 데서 울다가 땅으로 내려앉을 때 유심히 보고 있다가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가 보면 매번 헛수고로 끝나곤 했다. 그 근처에서 소란을 피우면 내려앉은 곳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날아오르곤 했다. 몇 번 시행착오 끝에 노고지리가 내려앉은 후 잠시 기다렸다가 그 근처로 가서 시끄럽게 소란을 피웠더니 바로 근처에서 푸드득 날아올랐다. 자기 집의 위치를 들키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꾀를 내었겠지만 사람 머리를 당할 수가 없다. 금방 날아오른 거기엔 어김없이 노고지리 둥지가 있었다. 그 속에는 대개 알들이 대여섯 개 있거나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들이 올망졸망 들어 있곤 했다. 가끔은 그 알들을 집으로 가져와서 이리 주무르고 저리 주무르다 결국 깨 버리거나 흐지부지 없어져 버리기 일쑤였다. 때로는 노고지리 둥지에 덫을 놓아서 어미를 잡기도 했었다. 잡은 어미새를 집으로 가져와서 엉성하게 집을 만들어 집어넣고는 온갖 벌레들을 잡아다가 먹이면서 기르느라고 애를 쓰다가 결국은 시름시름 죽여버리기 일쑤였다. 
 
복숭아나무, 살구나무 등 온갖 과실수들이 심어져 있던 시골집에는 조그만 화단도 꾸며져 있었고 뒤편에는 조그만 숲도 있어서 온갖 봄꽃들이 피었다. 여자아이들은 나물을 캐거나 꽃들을 꺾어서 놀기를 좋아했지만, 사내아이들의 관심은 늘 꽃보다 그 꽃에 꼬여드는 나비나 벌들에 더 많이 가 있었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게임 따위가 없던 시절이니 어떻게든 주변에 보이는 자연 속의 동식물들과 놀 수밖에 없었다. 말이 자연과 노는 거지 사실은 꽃을 보면 꺾어야 했고,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보면 잡아서 괴롭히다가 결국 죽이는 일이 곧 놀이였다. 아름다운 꽃이나 귀엽고 예쁜 곤충을 보면 그대로 두지를 못 하고 꺾거나 잡아서 자기 손안에 넣고 만지고 주물러 봐야 직성이 풀렸다. 수백 년 전 수로부인이 그랬던 것처럼. 성경책 속의 아담과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나비나 잠자리를 보면 어떻게 해서든 잡아서 이리 주무르고 저리 뜯어보고 하다가 날개를 찢어버리거나 다리를 부러뜨리곤 했다. 꽃에 앉은 벌을 보고도 가만두지 못 하고 결국 그 침에 쏘이고 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어이 잡아서 들여다보고 주물러 봐야 직성이 풀렸었다. 이상하게 찔레꽃 근처에 가면 뱀이 나오는 일이 많았는데, 뱀은 시골 아이들의 눈에 띄기만 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다. 멋진 조형물처럼 커다랗게 쳐져 있는 거미줄을 보면 어느 구석에 숨어 있을 거미를 기어이 찾아 잡아서는 꽁무니에서 억지로 거미줄을 뽑아내려고 용을 쓰다 그 불룩한 배를 터뜨리곤 했다.   
 
길을 가다가 소똥을 봐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었다. 주위를 잘 살펴보면 배터리를 넣지 않아도 살아 움직이는 멋지게 생긴 장난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쇠똥구리는 시골 아이들에게 보기 드문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생긴 것도 탱크처럼 아주 멋지고 단단하게 생긴 놈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지도 않고 느릿느릿하니 성가시지도 않아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노고지리를 좇는 일이나 주변 곤충들을 잡아서 노는 일이 시들해지면 근처 야산으로 올라가서 놀곤 했다.  임자 없는 무덤가에 피어 있는 할미꽃도 꺾어보고 불긋불긋 피어있는 진달래를 따서 씹어 먹어보기도 했다. 시큼 달콤한 진달래를 씹으며 저 멀리 아지랑이가 아롱아롱 피어오르는 산비탈을 오르는 상여꾼들의 구성진 만가를 듣고 있노라면 웬일인지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서러움 같은 게 밀려오기도 했다. 서럽도록 나른한 그 봄날을 우린 그렇게 보냈다. 에덴동산의 아담처럼. 이브처럼… 본능의 유혹을 따라…
 
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 노고지리들을…  그 나비를…  쇠똥구리를, 벌을, 거미를…  개구리와 뱀을 잡으면서 노는 그 원죄의 유혹을 이제는 뿌리칠 수 있을지? 어쩌자고 그렇듯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을 거리낌 없이 앗아 버렸는지? 단지 똥구녁이 간질간질하도록 나른한 봄날의 대책 없이 무료한 그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산문가 나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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