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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내기.jpg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그 날도 마지막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응로의 뒤에는 어김없이 한 무리의 또래들이 따라가면서 장단에 맞춰 이렇게 놀려대고 있었다. 응로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내가 다니던 시골 초등학교로 전학 온 친구였다. 응로는 우리 시골 아이들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많이 달랐다. 우선 얼굴이 뿌윰하게 도시스럽게 생긴데다 오동통하게 살이 쪄서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한 얼굴에 희끗희끗하게 마른 버짐이 핀 우리들과는 때깔이 달랐다. 또 책과 공책, 연필통을 보자기에 둘둘 말아서 등에 메고 다니던 우리들과는 달리 번듯한 책가방을 들고 다녔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한 건 응로의 말씨였다. 공부도 썩 잘 하지 못 하던 그 애가 늘 정확한 표준말을 또박또박 하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그 때까지는 책에서만 봐 왔고, 기껏해야 가끔씩 들었던 라디오에서 아나운서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표준말을 내 또래 아이가 일상적으로 하고 다니는 게 어찌나 신기했던지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생김새와 행동과 말씨가 다른 응로의 모습이 우리 촌놈들에겐 마치 구한말 어느 날 커다란 배를 타고 강화도에 들이닥친 요상하게 생긴 서양인들만큼이나 충격적이고 신기했다. 그러니 응로는 금세 전교생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그 관심은 곧 놀림으로 변하였다. 그 애만 보면 쓸 데 없는 말을 시키고, 그 말투를 흉내내다가는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좋은 고래고기!”의 합창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응로가 울상이 되어 “얘들아, 그러지 마. 싫어!”라고 하면, 그 낯선 말투를 또 재미있어 하며 더욱 신이 나서 놀려대곤 했다. 다들 어슷비슷한 환경속에 고만고만한 일상을 살아 가는 시골아이들속에 어느날 불쑥 나타난 이질적인 존재인 응로는 그렇게 혹독하게 놀림당하고 배척받았다. 그 때 우리들은 나와 다른 이질적인 존재를 받아들일 만큼 세련되지 못 한 철부지 촌놈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에겐 투박한 사투리가 ‘표준’이었고, 응로의 표준말은 우리와 다른 ‘서울내기의 말’일 뿐이었다.
 
내가 종종 일을 도와주는 이태리식당에는 다양한 인종들이 일을 하고 있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스리랑카출신의 타밀족들이다. 링건과 세칼은 그 식당에서 일을 한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타밀사람들은 인도 타밀나두주가 원래 고향이지만, 고대로부터 바다 건너 스리랑카의 동북부 지방에서도 살아 왔고 근대에 상당수 이민이 이어져 현재 약 3백만명이 그 곳에 살고 있다. 그런데, 스리랑카는 국민의 90%가 불교도이며 힌두어를 쓰는 반면, 타밀족은 기독교와 힌두교도가 대부분이고 타밀어를 쓰고 있으니 늘 소수민족으로서 차별받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기 나라에서도 주인 노릇을 못하고 따돌림당하는 신세가 싫어서 이민을 오게 된 것이다. 비록 이 곳에서는 ‘링컨’, ‘시걸’이란 다소 어색한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자기들과 비슷한 처지의 이라크, 이란, 쿠바, 우크라이나, 라트비아에서 온 다른 이민자들과 어울려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토론토지역에서는 160여개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이 식당에서만도 공용어인 영어외에 대여섯 가지 다른 언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모두가 소수다. 

사람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차별하고 배척하는 속성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최근 한국에서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장애인, 트랜스젠더등 사회적 소수자 열명중 여덟명이 온라인 뉴스기사나 영상의 댓글에서 혐오표현을 접했다고 한다. 온라인 카페나 커뮤니티 댓글(74%), 페이스북(73%), 블로그 댓글(60%), 트위터 댓글(49%) 등이 뒤따랐다. 장애인의 56%, 성적 소수자의 43%, 이주민의 43%가 이런 사회적인 차별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기독교가 유럽으로 전파된 이 후 중세이후까지 이어졌던 수많은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을 통해서 무수한 생명들이 단지 “다수인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갔음을 역사기록을 통해서 알고 있다. 그렇게 이성을 잃어버린 광란의 암흑기는 수백년동안 이어지다가 차츰 시민의식이 싹트고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18세기 말엽이 되어서야 겨우 끝이 났다. 그런데, 21세기 이 문명시대에 역사를 가르치는 일에서조차 이런 역사적 사실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 함은 비극이다. 근래 들어서 한국에서 극잔적인 대립 양상을 보이며 격렬해져가는 역사논쟁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칙중에 다수결의 원칙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소수에 대한 배려와 다양성의 존중이다. 소수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는 다수결은 전체주의적 독단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모든 면에서 다르게 태어나기 때문에 각자 행동과 생각과 추구하는 바가 다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 하는 사회는 곧 인간성을 말살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바라보노라면, 어린 시절 응로의 뒤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던 그 철부지아이들의 야만적인 악다구니가 귓전을 때리는 듯 하여 자꾸 도리질을 하곤 한다. “서울내기 다마내기 맛 좋은 고래고기!” <산문가 나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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