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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진보주의자가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갑작스런 비보에 삶조차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 시대 몇 안되는 '진정한 정치인'이라 더 그런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죽음에 대해 처음 생각한 건 대학생 새내기 때였다. 허무했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왠지 슬펐다. '나'라는 존재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 지금도 그 허무함은 가끔 엄습해온다. 어차피 답이 없는 화두이지만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많은 '인간'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평소 '죽음'을 망각하며 사는 듯하다. 애써 생각하기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인 것만은 확실하다. 가상의 세계인 드라마에서조차 현실의 사람들이 주인공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돌려놓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최근의 이런 '두려움'과 '허무함'은 2009년 5월에도 똑같이 느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운전 중이었다.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뭘 하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 그냥 운전대만 부여잡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눈물도 당연히 나지 않았다.
노회찬 의원 영정사진을 보고나서야 눈물이 터졌다는 조국 수석의 글처럼 그 순간에는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눈물은 노무현 분향소를 다녀와서도 터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소주를 마시며 쓴 웃음만 지었다.

그 당시 적었던 댓글에는 '노무현의 서거'를 거창한 표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눈물이 나지 않은 이유도 그는 여전히 마음속에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정신을 구현하지 않는 이상 그를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못 보내고 있다. 

요즘은 부쩍 두 진보정치인의 '허망한 죽음'을 생각하며 '종잡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정치와 죽음을 생각하며 갖는 '허무함'과 '두려움'이 복잡하게 교차되면서 더욱 그렇다.

근본적인 물음부터 다시 해봤다.

'도대체 진보란 무엇인가'
'왜 유독 진보 정치인에게만 이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할까'
'한국사회는 왜 진보 정치인에게만 '엄격한 도덕성'을 적용할까'

진보의 사전적 의미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없다. 그냥 역사 발전을 위해 열심히 변화를 추구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진보 정치인이 도덕적이면 안된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한국의 정치 현실을 감안해 현실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부분은 쿨하게 타협하고 서민을 위한 '정책 개발'에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다.
도덕적인 개인 한 사람보다 어려운 사람들 살리는 정책 개발이 보다 합리적이지 않을까.

여기 동아대학교 정희준 교수의 글이 의미심장하다.

"도덕성이 정말 진보 진영의 유일한 무기인가? 진보는 정말 도덕성에 바탕하고 있는가? 아니, 어쩌다 도덕성이 진보의 족쇄가 됐는가?

도덕성은 원래 보수의 덕목이다. 도덕이란 당연히 기존 가치들의 결집이고 보수의 이데올로기이다. 가진 자일수록, '사회 안정'을 추구할수록, 모범을 보이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진보는 도덕적일 수 없다. 진보가 무엇인가. 변화다. 기존의 사고와 행동의 틀에서 자유로워야할 뿐 아니라 도전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도덕적일 수 있겠는가. '진보=도덕성'이라는 공식은 한마디로 논리 모순이다.

그렇다면, 어쩌다 도덕성이 '진보의 무기'가 되었나. 군사 독재가 이어지고 정경유착이 뿌리내리면서 우리의 보수는 부패했다. 사실 한국의 보수는 스스로 부패(또는 부정)했거나 부패를 옹호하거나 부패와 친한 사람들이다. 돈도 많은 사람들이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부패는 자연스런 조합이 되었다.

그런데 공룡과도 같은 보수와 맞서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진보는 내세울 게 없었다. 급한 대로 집어든 게 도덕성이었다. 사실 진보엔 가난한 이들이 많았고 따라서 도덕성에선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진보와 도덕성의 조합은 부패한 보수의 아픈 곳 찌르기에는 매우 편리하면서도 탁월한 무기였다.
 "

정교수는 이러한 진보의 '탁월한 무기'인 도덕성이 오히려 스스로를 프레임에 가둬놓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진보가 계속 도덕성을 표방하다 보니 스스로 도덕성을 계속 증명해야 했고 또 사소한 도덕성 시비에도 매우 취약한 구조"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진보에게 '도덕성은 보수에게 던져버리라'고 조언한다. 정치인이 '사람 상대하고 조직을 꾸리면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보수는 '도덕성 프레임에 스스로 갇힌 진보를 보며 웃는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두 정치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지금은 세명의 정치인이다.

'노무현 대통령', '노회찬 의원'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참여정부 당시 '한-미 FTA'가 상당히 논란이었다.
진보진영에서는 당장이라도 한국이 망할 것처럼 극렬히 반대했다.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기반이 분열하는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당시 진보진영이 우려한 상황은 지금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쪽에서 협상을 다시하자고 했으니 적어도 '굴욕협상'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구도는 '악순환' 그 자체였다.

참여정부 한미FTA 추진 공식화 → 진보진영 극렬 반대 → 보수·진보언론 서로 다른 논조로 정부 공격 → 지지율 하락 → 개혁정책 추진동력 상실 →  진보진영, 참여정부 개혁정책 실종 비판 → 지지율 추가 하락

정치는 '국민 지지율'로 먹고 산다. 정치인이 아무리 힘이 있더라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국 기댈 곳은 국민들 지지밖에 없다. 다만, 여론을 고려할 머리 자체도 없는 그녀는 별종이었다. 여론보다 '개인 돈벌이'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그 사람도 특이했다. 그래도 그들 모두 국민이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국가 안보에 전념해야 할 '국방부와 국정원'에 '댓글 작업'을 시켰다.

참여정부는 '국토균형발전 등' 의미있는 여러가지 성과를 냈음에도 많은 사람들은 '5년간의 악순환'을 떠올리며 '성공하지 못한 정부'로 평가한다. 

극우·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행해진 이러한 '프레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은산분리 완화 정책'을 보자.
이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발표하자마자 진보진영으로부터 극렬한 공격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도 못한 것을 문재인 정부가 한다는 것이다. 공약을 파기했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정책의 핵심은 '인터넷 전문은행의 활성화'이다. '은산분리'는 금융의 기본 원칙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제는 '악순환의 출현'이다.
참여정부의 그것처럼 '지지기반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혀 정책 추진의 동력을 상실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우·보수세력'이 가장 원하는 구도다. 극우·보수언론이 문재인 정부를 극찬한 이유다. 진보언론은 극우·보수언론이 문재인 정부를 칭찬하고 있다며 또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도 이러한 '악순환의 프레임'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에 대한 노회찬 의원의 반응이 궁금하다. 분명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구도를 분명히 직시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평가는 "불법·탈법 범죄자 집합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분명 극우·보수언론의 프레임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정희준 교수의 일갈이 신선하다.

"진보는 능력으로 승부해라. 능력 있지 않나. 지금 보수의 실력자나 이데올로그들은 대부분 진보에서 훈련받은 사람들 아닌가.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 진보적 시민 단체의 젊은 활동가들은 웬만한 교수보다도 훌륭하지 않은가. 정책 만들기도 바빠 죽겠는데 왜 '도덕성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까지 해야 하나.

특히 '도덕성 타령'은 진보의 확장에 방해가 될 뿐이다. 특기(?)가 고작 도덕성이라는 진보에 요즘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겠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다. 손석희, 김제동, 박경철 모두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이겐 성공한 사람이 곧 떳떳한 사람인 것이다.

이제 '도덕성이 유일한 무기'인 진보와는 안녕을 고해야 한다. 성공한 진보, 부자 진보가 나와야 하고 전문인 진보가 많아져야 한다. '식스팩복근' 진보도 나와야 하고 '까도녀' 진보, '섹시한' 진보도 나와야 한다. 노동자가 부자가 되는 세상도 어서 와야 한다.

강남 좌파를 까칠하게 보는 진보, 유일한 무기가 도덕성이라는 진보. 나는 그런 진보 안 하련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요즘, 진보의 패러다임도 이제는 변해야하지 않을까.

정말이지, 매번 진보진영이 당하는 '안타까움'은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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