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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저돌적으로 밀어붙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목표에 지나치게 매몰된 탓인지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90%가 좌파”라는 무리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의 이런 인식에 많은 원로 역사학자들은 “너무 무식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런 무식한 정치인이 과연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 그 자격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하도 우스워 말이 안 나온다. 우리나라가 그런 사상까지도 어느 정도 허용하는 나라니까 10%가 그럴 수는 있겠지만 90%가 좌파라는 김 대표 발언은 역사학계를 바보 취급하는 것”이라고 꾸짖었다.

정 교수가 꼬집은 ‘무식한 지도자’는 김 대표에 국한되지 않는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정화 확정고시 기자회견에서 전국 고등학교의 약 99.9%가 편향성 논란이 있는 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과서의 편향성보다 총리라는 막중한 자리에 앉아 있는 인사의 극단적 편향성이 더 위험해 보인다.

이것이 현 대한민국 집권 엘리트들의 의식수준이다. 아무리 한국정치의 이념과 철학이 서구국가들에 비해 빈곤하고 세련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설득력 있는 근거는 찾아보기 힘들고 ‘묻지 마 지지층’ 결집을 강화하기 위한 선동만 있을 뿐이다. 이들의 억지 주장이 지지층 머릿속에는 쏙 박힐지 몰라도 지도층으로서의 책임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은 반세기 넘게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진보를 판단할 때 서구, 특히 유럽의 보편적 기준보다는 좀 더 왼쪽에 놓고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유럽에서 중도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과 입장이 한국에서는 급진적인 좌파로 분류되곤 한다. 이념의 좌표를 10단계로 나누어 본다면 한국의 진보는 유럽보다 두 칸 정도 더 왼쪽에 놓이게 되는 것 같다.

진보학계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최장집 고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념적 입장은 ‘온건한 진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실현이 가능한 범위에서 진보를 이야기하고 개혁을 주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한국에서 종종 ‘극좌’나 ‘급진좌파’로 분류되곤 한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이런 편향성에 대해 “한국의 이념적 지형 자체가 지나치게 극우로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진단한다.

극우적 생각을 가진 세력이 권력까지 쥐었으니 지금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눈에는 온건한 진보와 중도는 물론이고 심지어 온건한 보수조차 ‘위험한 좌파’로 비취지는 것 같다.

집권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들의 편향이 한층 더 심해지는 건 ‘종북’ ‘좌파’ 딱지붙이기가 안겨주는 짭짤한 정략적 이익에 맛들인 때문이다. 위기상황이 닥칠 때마다 ‘종북’과 ‘좌파’를 주문처럼 외쳐대기만 하면 지지층은 똘똘 뭉치고 관심은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다. 그들로서는 손해 볼 것 하나 없는 장사다.

자기중심적인 편향에 대해 말하다 보니 ‘동산’과 ‘서산’에 관한 법륜 스님 설법이 생각난다. 두 마을 사이에 산이 하나 있는데 한 동네 사람은 ‘동산’이라 우기고 건너 동네 사람은 ‘서산’이라 주장하며 밤새 싸웠다는 이야기다. 자신의 시선에만 갇혀 있는 게 얼마나 어리석고 우스꽝스러운지를 깨우쳐 준다. 오른쪽 맨 끝에 서 있는 사람 눈에는 가운데조차 너무 왼쪽으로 치우쳐 보일 것이다.

나와 입장이 다르면 일단 ‘좌파’로 의심하고, 실제로 이 말을 습관처럼 입에 올리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딘지 한번 발밑을 내려다보기 바란다. 아마도 그곳은 십중팔구 상식과 균형의 싹이 자라지 못하고, 편향과 몰상식의 잡초만 무성한 오른쪽 벼랑 끝 거친 땅일 것이다.

미주한국일보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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