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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에 발을 맞추려는 무리수

조윤성 / 논설위원

미주한국일보: 2014-12-24 (수)


복잡한 상황과 사태의 핵심을 짚어내는 데 긴 사설보다 촌철살인의 짧은 문장 하나 혹은 단어 한 개가 더 유용한 경우가 다반사다. 매년 연말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그 해 한국사회를 되돌아보며 고르는 ‘올해의 사자성어’에 국민들이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딱 부러지게 이렇다 지적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명쾌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의 사자성어로 교수들이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지록위마’(指鹿爲馬)였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부른다’는 뜻으로 남을 속이기 위해 옳고 그름을 바꾸고, 윗사람을 농락해 자신이 권력을 휘두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진시황제의 무능한 어린 아들 호해를 황제로 세운 후 권력을 농단했던 환관 조고의 이야기에서 나온 사자성어다. 세월호로 시작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스캔들로 마무리된 올 한해 많은 교수들이 이 사자성어를 고른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내게 올해의 사자성어를 꼽으라면 ‘지록위마’에 이어 2위를 기록한 ‘삭족적리’(削足適履)에 표를 던졌을 것 같다. ‘삭족적리’는 ‘발을 깎아 신발을 만든다’는 뜻으로 모든 것을 자기가 정한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 드는 무모함과 일방적 태도를 꼬집고 있다. ‘위록지마’가 올 한해를 풍자하고 있다면 ‘삭족적리’는 한 해를 넘어 한 시대의 일그러진 사회상을 축약해 주고 있다.

신발의 크기에 맞춰 발을 깎는다니, 이런 억지가 어디 있을까. 이로 인해 무수한 이들이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삭족적리’의 불합리성은 한국사회를 지속적으로 옥죄어 왔으며 특히 최근 몇 년 간은 이런 논리에 완전 지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들의 자기중심적 독단과 아집은 동서고금이 똑같은지 그리스 신화에도 ‘삭족적리’를 경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그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교외 아티카의 강도였다. 그는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누가 드러누워도 꼭 맞는 침대가 있으니 자고 가라”고 꾄다.

그는 여행자를 쇠침대에 눕힌 후 침대보다 키가 더 크면 다리를 잘라 버리고 반대로 키가 작으면 목을 늘려 침대에 맞췄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위에서는 오직 하나의 사이즈만 허용될 뿐이었다. 다른 사이즈는 곧 고통과 죽음을 의미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기주장만 난무할 뿐 상대에 대한 이해나 배려는 실종된 살풍경한 한국사회를 상징해 준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정치판이 그렇고 오너의 생각이 곧 절대선이 되는 재벌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침대 위에서 권력자가 제시하는 단 하나의 사이즈에 들어맞지 않는 것들은 소멸시키고 잘라내야 할 ‘원수’와 악이 된다.

지난 2년간 대통령의 일방통행적인 국정운영으로 ‘정치’는 실종되고 ‘통치’만이 남았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그런 비판들 가운데는 대통령에 우호적이었던 정치인들의 목소리도 있다. 한 원조 친박 정치인은 “대통령이 경직된 지시를 내리면 관료들과 여당 정치인들은 이것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여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시행하려 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증세문제를 사례로 들었다. “증세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지침을 받들면서 세수를 늘리려다보니 결국 담뱃값 인상이라는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서민증세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무리한 ‘삭족적리’에 애꿎은 서민들의 발만 깎여나갔다. 검찰과 경찰, 법원 등 권력기관들의 행태에서도 윗분이 넌지시 던지는 ‘가이드라인’을 금과옥조로 받드는 무리수가 갈수록 두드러진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한국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부추겨 왔다. 그러면서 건강한 토론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사회적 갈등의 책임으로부터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지만 권력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부피와 무게는 훨씬 크고 무겁다. 권력이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으로만 재단하려 들 때 사회의 다양성은 억압되고 질식한다.

침대에 맞지 않는다고 나그네들의 머리와 다리를 마구 자르는 악행을 저지르던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자기 침대에 묶인 후 머리와 다리를 잘리는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다. 일방적인 무리수는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돼 있다는 것이 신화의 생생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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