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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이들을 도우며 사는 것이 평생의 소망

 

소녀는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늘 환한 웃음을 띄고 모두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소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녀는 특히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사랑했다. 동네에서 가장 말썽꾸러기, 떼쟁이 아이들도 소녀에게 오면 어느새 생긋생긋 웃는 순한 양으로 변했다. 소녀를 따르는 어린 아이들 중에는 조금 아픈 이들도 있었다. 뇌성마비, 자폐 등으로 남들과 조금은 달랐던 그 아이들에게 소녀는 더욱 마음이 갔다. 그들이 작은 걸음 한발자국이라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맞이할 때면 소녀의 가슴은 감당할 수 없이 벅차올랐다. 그때 소녀는 다짐했다. “평생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살아가야지.”

김기순 언어치료사(41)는 매일 다른 여러명의 얼굴들을 맞는다. 유치원생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그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김 치료사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다. 하루에 여러명씩 상대하다 보면 으레 피곤하고 짜증날 법도 한데 김 치료사의 얼굴은 늘 환하다. “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그저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이 일을 선택한 것이 무척 행복하고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 언어치료는 내 운명

어려서부터 어린이들을 무척 좋아했고 특히 아픈 아이들을 돕고 싶어했던 김 치료사의 오랜 꿈은 ‘특수교육자’ 였다. 힘들고 고된 일이라며 주위의 만류가 클 수록 김 치료사의 의지는 더욱 굳어져만 갔다. 학창 시절에도 기회가 닿을 때면 여러 봉사활동 자리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던 김 치료사는 ‘특수교육’내 전문 분야 지식을 쌓는 것이 남을 더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고민하던 1997년 어느날 어느 날 친구가 “세브란스 병원에서 ‘언어치료학’이라는 과정을 새로 신설하는데 한 번 배워보지 않을래?” 라고 제안했다. ‘바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어 그 길로 곧장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갔다. 알고 보니 그 날이 등록 마감일이었다. 과정 입학을 위해서는 석장 정도의 논술문을 써야 했는데 오랜 기다림과 간절함이 컸던 만큼 김 치료사는 그 자리에 앉아 모든 글들을 뚝딱 써내려갔다.

그 마음이 닿았던 것일까. 제대로 준비하지도 못하고 치뤄버린 입학시험 아닌 입학시험이었음에도 당당하게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후 2년동안 혹독한 과정 공부가 이어졌다. 학교가 아닌 병원에서 이뤄지는 교육과정이었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던 ‘언어치료학’을 외국계 박사들이 국내에 처음 도입해 와 직접 가르치고 감독했던 것 만큼 대학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학업량이 요구됐다. 새벽을 열고 나와 밤공기를 가르며 귀가하는 날이 잦았다. 병원 안을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수도 없이 많은 실습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2년동안의 고된 교육은 순수하게 ‘남들을 돕고자 했던’ 한 여성을 ‘전문 지식을 통해 남을 도울 수 있는’ 전문인으로 탈바꿈해주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모든 언어치료학 과정을 수료한 ‘제 1기 졸업생’ 김 치료사는 배운 지식을 토대로 본격적인 언어치료사 일을 시작했다. ‘전문인’ 김 치료사를 찾아온 사람들을 더욱 폭 넓고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됐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더해질 수록 김 치료사에게는 그들을 더욱 ‘잘 돕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몇 년 후, 김 치료사는 학교로 돌아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의 언어병리학 과정에 입학한 김치료사는 석사 학위와 함께 가장 높은 등급인 ‘1급 언어치료사’ 자격을 획득하게 됐다.

▶ 지식과 사랑을 겸비한 진정한 치료자

‘언어치료’는 단순히 발음을 교정한다던가 관련 장애를 치료하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폐, 청각장애, 뇌성마비, 정신지체 등의 선천적인 이유나 중풍, 실어증 등의 후천적인 이유로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언어를 평가하고 치료하는 일을 담당한다. 음식물이 구강에서 식도로 넘어가는 과정에 문제가 생겨 음식을 원활히 섭취할 수 없는 증상인 연하장애(삼킴장애/)도 언어치료 대상에 포함된다. 각 케이스마다 그리고 개인마다 장애의 종류와 정도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개별적인 상담, 연구,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

영유아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언어치료를 필요로 하는 나이대는 다양하지만 유아기에 기본적인 언어발달이 이뤄지는 만큼 어린 나이의 환자들이 많이 찾는다. 특히 자폐증을 가진 아동들이 주로 언어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러한 환자들에게는 단순히 단시간의 치료만 거행해서는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 없다. 환자와 치료자, 개인과 개인간의 긴밀한 신뢰관계가 먼저 형성됐을 때 비로소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그렇기에 어린 아이들, 특히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거리낌없이 어울렸던 김 치료사는 ‘언어치료사’는 자신에게 있어서 ‘천직’과 다름없다고 고백한다.

그렇다고 1급 치료사로 재직해 온 12년 동안의 시간들이 모두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하루의 일들이 너무 무거워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날들도 있었다. 장애가 심한 환자들의 경우 순간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돌발적인 공격적인 성향을 보일 수 있는데 이를 잘 대처하지 못하면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힘든 과정을 겪고 있는 환자와 가족들을 이해하고 격려하면서 치료를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계획한 대로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경우 어마어마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해야했다.

그래도 김 치료사가 여전히 ‘언어치료사’ 외의 다른 직업을 갖는 걸 상상해 볼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치료를 통해 조금씩 발전해나가는 환자들을 볼 때면 감당할 수 없이 가슴 벅차오르는 보람감 때문이다. 입을 꽉 다물고 말하기를 거부해왔던 환자가 입을 열어 자신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거나 눈맞추기도 싫어하던 아이가 또렷하게 눈을 맞춰오고 손을 어루만지며 ‘고맙습니다’라고 말할 때에는 그동안의 모든 고민과 피로감이 한번에 날라가 버린다고. 자신의 도움을 통해 조금씩 나아져가는 환자들을 바라보며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울고 웃는 것이 바로 김 치료사의 심장을 뜨겁게 뛰게 하는 원동력, 그녀가 이 일을 어제보다 오늘 더 많이 사랑하는 이유다.

▶ 언어치료사는 미래 유망한 전문직, 지적 호기심과 이해심 높아야

현재 김 치료사는 광역토론토에 거주하는 언어치료가 필요한 한인들에게 언어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분주한 이민생활 때문에 전폭적인 언어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동들을 위해서는 부모들이 직접 집에서 응용할 수 있는 부모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

밀알선교원, 성인장애인공동체에서 정기적인 언어치료 봉사를 하고 있고 전반적인 언어발달 및 심리평가를 원하는 한인들을 위해 무료 상담을 제공하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김 치료사의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은 여전히 식지 않았다. 서구의 언어치료학 교육을 배우기 위해 현재 국내 대학원 입학 준비과정중에 있다.

김 치료사는 종종 자신도 언어치료사가 되고 싶다며 어떻게해야 될 수 있는지 물어오는 어린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언어치료사는 전문직이로 미래성도 매우 유망한 우수 직종입니다. 그러나 성급하게 진로를 정하기 전 정말 이 일이 자신에게 알맞는 일인지 꼼꼼히 확인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사람을 상대하는 언어치료사는 특히 자신의 일을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직업입니다. 상대방을 위한 인내심, 이해심, 배려심이 투철하고 사교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의 사람에게 잘 어울립니다. 또 공부양이 많으니 지적 호기심이 높고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겠지요.”

미래 계획을 묻자 김 치료사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지금의 일을 더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것입니다”고 대답한다. 자기에게 능력이 닿는 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돕고 섬기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 소원이라는 김 치료사. 얼마 안 있으면 다른 치료아동이 온다며 들뜬 얼굴로 미리 준비해놓은 자료와 치료 도구들을 분주히 챙기는 김 치료사를 바라보며, 문득 김 치료사를 거쳐간 사람들은 무척 행복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토론토 중앙일보(2013.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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